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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이 여행을 다녀와서도 한동안 정리가 잘 안 됐어요.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딱 하나를 못 고르겠고, 사진을 보다가도 “아 이때…” 하고 말이 끊기고요. 아마 이게 신혼여행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보낸 11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둘이 같이 조금 길게 살아본 시간에 가까웠거든요.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공기가 달랐어요. 한국에서의 속도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는데, 스페인은 그걸 바로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들도 급하지 않고, 길도 굳이 빨리 걸을 이유가 없어 보였고요. 처음 며칠은 “그래도 유럽 왔는데 많이 봐야지” 하면서 지도 열어보고 일정 확인하고 그랬는데, 그게 오래가진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까 정도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스페인에서는 햇빛이 참 강했는데, 이상하게 눈이 부시기보다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낮에는 골목을 걷고, 벽에 기대서 사진을 찍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웃고. 그러다 카페에 앉으면 커피가 식을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앉아 있기도 했어요. 꼭 뭘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게, 그게 참 좋았어요. 예전 여행 같았으면 괜히 불안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래도 되나?”가 아니라 “이래서 좋다”였어요
포르투갈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또 달라졌어요. 스페인이 활기라면, 포르투갈은 조용한 쪽이었어요. 도시가 말을 아끼는 느낌이랄까. 해 질 무렵에 언덕 위에서 노을을 봤던 날이 있었는데, 사진도 몇 장 안 찍고 그냥 같이 서 있었어요. 그때는 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건, 그 장면은 지금도 말없이 떠오른다는 것이에요.
여행 중에 완벽했던 날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피곤한 날도 있었고, 날씨가 애매한 날도 있었고, 괜히 예민해질 뻔한 순간도 있었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크게 남는 건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기억에 남는 건, 비 오는 날 상점에서 대충 고른 빵을 나눠 먹던 시간이라든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웃던 순간들이었어요.
사진도 처음에는 열심히 찍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가방에 넣어두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대신 눈으로 보고, 걸으면서 느끼고, 서로 표정을 더 많이 보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사진을 다시 보면 구도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때의 공기가 느껴져요. 약간 흐릿해도 괜히 웃고 있는 얼굴 같은 거요.
11박이 길 것 같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참 묘하게 딱 맞았어요. 처음엔 설레고, 중간엔 편안해지고, 마지막엔 돌아가기 싫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 흐름이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가면 뭘 더 보고 싶어?” 같은 질문은 안 했어요. 대신 “우리 다음엔 이렇게 천천히 가자”라는 말이 나왔고, 그게 이 여행의 정리였던 것 같아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예쁜 곳이 많아요. 근데 이 여행이 좋았던 이유는, 그 나라들이 우리에게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준 것 같아서였어요. 신혼여행이라서 특별했다기보다는, 신혼이라서 그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어요.
이 여행이 이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이메스유럽 임응석 대표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욕심내지 않고, 신혼부부의 리듬에 맞게 여행 루트를 정말 잘 짜주셨기 때문이에요.
많이 보여주려는 일정이 아니라, 지치지 않게,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진 동선이라서 여행 내내 “편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덕분에 저희에겐 이 11박이, 잘 다녀온 여행을 넘어서 오래 기억될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